두 가문 사이에는 오래전부터 전쟁이 있었다.
왕국이 아직 하나로 굳어지기 전, 권력과 영토, 그리고 서로를 향한 불신이 뒤엉킨 싸움 속에서 두 가문은 가장 앞선 전선에 서 있었고, 그 전쟁은 단순한 충돌이 아니라 세대를 갈라놓는 깊은 상처로 남았다. 누가 먼저 칼을 들었는지, 누가 배신했는지는 이미 기록에서도 희미해졌지만, 확실한 건 그 전쟁 이후로 두 가문이 다시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서로를 평온하게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원한은 끝나지 않았고, 죽지 않은 증오는 다음 세대로 고스란히 전해져, 아이들에게까지 상대 가문의 이름을 경계와 적대의 상징으로 가르치게 만들었다.
두 가문이 맞닿아 있는 경계에는 하나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전쟁 당시 수많은 피를 받아낸 강은, 겉보기에는 고요하게 흘렀지만 그 물결 아래에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기억들이 가라앉아 있는 듯했다. 사람들은 그 강을 경계로 삼아 함부로 넘나들지 않았고, 서로의 땅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늘 긴장과 적의가 섞여 있었다. 그 강은 두 가문을 나누는 선이자, 동시에 다시는 이어져서는 안 될 틈처럼 여겨졌다.
그런 강가에서, 토미오카 가문의 도련님인 기유는 어느 날 몰래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성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자라온 그는 경계의 강이 지닌 의미를 온전히 알지 못했고, 물가에 반짝이며 부서지는 햇빛과 잔잔한 물결이 그저 낯설고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젖은 돌 위를 밟는 순간 균형을 잃은 그의 몸은 그대로 강물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고, 차가운 물살은 생각보다 깊고 거칠게 그를 끌어당겼다. 숨이 막히듯 물이 폐로 밀려들고, 발버둥칠수록 몸은 더 아래로 가라앉아, 그 순간의 공포는 그가 지금까지 겪어온 어떤 두려움보다도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를 물 밖으로 끌어낸 것은, 우연히 그 강가를 지나던 시나 가문의 도련님, 사네미였다. 경계의 강 너머는 본래 발을 들여서는 안 될 적의 땅이었고, 사네미 또한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지만, 물에 잠긴 사람의 흔들리는 그림자를 본 순간 그런 계산은 전부 의미를 잃어버렸다. 그는 본능처럼 물속으로 뛰어들어 기유의 옷자락을 붙잡았고, 거친 물살에 휩쓸리면서도 끝내 그를 놓지 않은 채 강둑으로 끌어 올렸다.
그제야 옷에 드러난 문양을 보고, 자신이 구해낸 이가 원수 가문의 도련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이미 그때는 되돌릴 수 없는 순간이 되어 있었다.
그날 이후, 두 가문 사이에 놓인 강은 더 이상 단순한 경계선이 아니게 되었다. 전쟁으로 깊어질 대로 깊어진 증오 한가운데에서, 서로의 이름만으로도 등을 돌려야 했던 두 사람의 인연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위험한 그 경계에서 시작되었고, 그 작은 우연은 훗날 두 가문의 오래된 원한마저 흔들어 놓을 만큼 커다란 파문이 되어 번져 가기 시작했다.
해가 완전히 가라앉은 뒤, 왕국의 외곽에 버려진 오래된 폐허에는 달빛만이 조용히 고여 있었다. 무너진 성벽 틈으로 바람이 스며들고, 돌바닥 위에는 낮에 내린 비가 아직 마르지 않은 채 얕은 물기를 남기고 있었다. 두 가문이 서로의 이름만 들어도 칼을 빼 들던 역사가 이 장소까지 따라오지는 못한 듯, 이곳은 늘 이상할 만큼 고요했다.
사네미는 먼저 와 있었다. 기둥에 등을 기대고 서서, 괜히 하늘을 올려다봤다가, 다시 폐허의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리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늦는 건 늘 기유 쪽이었는데, 그게 알고 보면 성 안의 경계 때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 밤이면 마음이 먼저 조급해졌다.
잠시 후, 무너진 돌벽 너머에서 조심스러운 기척이 느껴졌다. 어둠을 가르듯 다가오는 기유의 그림자가 달빛에 비쳐 드러나자, 사네미의 굳어 있던 어깨가 눈에 띄게 풀렸다. 마치 밤공기 속에 섞여 있던 긴장이 그제야 빠져나가는 것처럼.
왔네.
낮게 부른 목소리는 놀랄 만큼 부드러웠다.
오늘은… 무사히 나왔어?
기유는 대답 대신 고개를 조금 끄덕였고, 사네미는 그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괜히 마음이 놓여 숨을 길게 내쉬었다. 성 안에서 자란 도련님이 이 험한 길을 혼자 건너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시선을 피해 왔을지, 그 과정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그려져서였다.
사네미는 다가오는 발걸음에 맞춰 천천히 한 걸음 다가갔다. 너무 가까워지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혹시라도 밤공기가 차가워 기유가 떨고 있지는 않은지 먼저 살폈다. 달빛 아래 드러난 얼굴이 낮보다 더 창백해 보이자, 괜히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추웠겠다. 여기 바람 세잖아.
그는 자신의 외투 자락을 정리하고는 기유와 바람이 바로 맞닿지 않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바꿔 섰다.
폐허의 돌기둥 뒤편은 바람을 조금 막아 주는 자리였다. 사네미는 그 앞에 서서, 마치 방패라도 되는 것처럼 기유 쪽으로 불어오는 찬 기운을 가로막았다.
이런 데까지 오느라 고생했어.
출시일 2026.02.12 / 수정일 2026.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