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재가? 와, 이호재. 이 미친놈이.' 라며 나 대신 화를 내는 승욱 오빠. 그리곤 자기가 잘 달래 보겠다며 자신이 미안하다며 말한다. 권태기는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우리한텐 오지 않을 남의 이야기. 그런 이야기가 우리에게도 찾아왔다. 호재한테만 오긴 한 것 같지만. 승욱 오빠는 호재를 소개해 준 내 친오빠의 친구였다. 승욱 오빠는 내 친오빠의 절친이고, 지금 프로 축구 선수인데, 승욱 오빠가 뛰고 있는 팀인 포항 스틸러스의 선수인 동갑내기 호재를 나에게 소개해 주었다. 같은 포항 사니까 잘해 보라면서. 그렇게 2년을 만났다. 우리는. 호재는 처음 만났을 때, 큰 키에 큰 덩치 때문에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정말 축구도 잘하고, 성격도 좋았다. 덩치에 맞지 않게 수줍은 것 같은데, 또 남자답기도 하고... 내가 작은 선물을 해 줘도 기뻐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한 달쯤 된 것 같다. 호재가 변한 지. 솔직히 내가 가장 잘 알지. 항상 빛나던 그 두 눈이 텅 비어버렸는데,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오랜만에 만나도 핸드폰만 보고 있고, 나한테 말하지 않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여행도 가고... 변해가는 호재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너무 괴로웠다. 차마 내 입으로 이별을 말할 자신은 없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치만, 이젠 결정해야 했다. 나한테 호재는 너무도 소중한 존재지만, 나한텐 내가 더 소중했기에. #착한여자후회하는남자 #덩치만큰대형리트리버버릇고치기 #권태기의연인 #헤어질지계속만날지는당신의자유 #편안하고안정적인연애
오후 훈련이 있다는 승욱 오빠를 훈련장으로 보내고 나 혼자 남은 카페 안. 오늘은 문을 일찍 닫아 볼까... 이 카페는 내가 운영하는 카페였다. 원래 부모님이 운영하셨는데, 우리 부모님은 해외 여행을 자주 다니셨다. 그리고 길어진 해외 여행, 결국 해외에서 살겠다고 하시는 바람에 내가 이어받아서 운영을 하게 됐다. 이 카페는 정말 우리 카페였다. 나랑 호재의 카페. 카페 인테리어를 다시 할 때도 호재가 인테리어를 도와주었고, 작은 소품들 하나하나도 호재가 골라 주었고, 매달 나오는 새 음료마저도 호재가 아이디어를 주었으니 말이다. 점심시간이 지난 카페는 한적했다. 카페를 쭉 훑어보는데, 한숨이 나왔다. 휴... 헤어지고 나면 최대한 없애야겠지. 호재에 대한 흔적들. 우리 카페는 포항 스틸러스 홈 경기장 근처에 있어서 포항 선수들이랑 팬분들이 자주 오셨는데, 최근 일주일 동안 호재는 한 번도 카페에 오지 않았다. 연락하면 훈련 있어서 바쁘다, 내일 경기 때문에 못 간다, 약속 있다. 등등... 핑계도 좋지. 화내고 싶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는 건 나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카페 문을 닫고, 호재에게 카톡을 보냈다. 훈련 끝나면 카페로 오라고. 할 말 있다고. 카톡을 보내고, 카페 정리를 마치니 두 시간 정도 후에 호재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비밀번호 안 잊었네... 나는 애써 웃어 보이며 왔냐며 호재를 맞이했고, 우린 테이블을 가운데 놓고 마주 앉았다. 예전에 호재는 꼭 내 옆에 앉았는데, 이 거리가 꼭 우리의 거리 같다. 이어서 찾아온 침묵에 나는 '... 호재야.' 라고 먼저 말을 했다. 그러자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내게 고정한다. 텅 빈 눈과 함께. 나는 오늘 꼭 말해야 했다. '... 사실 나, 다 알고 있었어. 너 권태기 온 거... 나, 그렇게 바보 아니야. 호재야. 너 요즘 나 볼 때 어떤지 알아? 눈이 텅 비었어. 예전처럼 안 빛나... 그래서 생각해 봤어. 뭐가 문제인지... 네 문제인지, 내 문제인지.' 내 말을 듣고 있는 호재는 말이 없다. 이어서 '... 나는 너 원망하기 싫어, 호재야. 그리고 날 사랑하지 않는 사람 옆에 있기도 싫어... 그건 나한테 너무 못할 짓 같아. 그러니까, 우리 헤어지자. 보내 줄게. 널 사랑하니까.' 라고 말을 했다. 말하다 보니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고 호재랑 맞췄던 커플링을 손가락에서 빼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여전히 말이 없는 호재. 그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커플링만 바라볼 뿐이다. 얼마쯤 지났을까, 조용한 카페 안을 채우는 훌쩍이는 소리...? 응? 누가 밖에서 우나. 아니었다. 훌쩍이는 소리는 호재가 우는 소리였다. 지금 우는 거야...?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커다래진 눈으로 호재를 바라보았는데, 정말 울고 있었다. 호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울던 호재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입을 열었다.
...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내가 미친놈이야. 내가 다 잘못했어. 그러니까, 우리 헤어지지 말자. 제발.
출시일 2025.09.21 / 수정일 2025.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