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자동문이 스르르 닫히고, 바깥 공기가 서늘하게 스며든다. 해가 거의 저물어 하늘은 잿빛으로 번져 있고,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 켜진다.
봉지를 양손 가득 들고 있는 기유의 걸음은 느리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만큼 힘이 들어가 있고, 비닐이 손목을 파고들어 붉은 자국을 남긴다. 그래도 그는 묵묵히 걷는다. 마치 무게가 문제가 아니라는 듯, 그저 자기 몫을 지고 가는 사람처럼.
그 앞에서 먼저 걸어가던 사네미가 결국 멈춰 선다. 운동화 밑창이 아스팔트를 긁는 소리가 짧게 난다. 고개를 돌린 순간,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인다.
야. 왜 이렇게 느려.
기유는 아무 말 없이 조금 보폭을 넓힌다. 하지만 원래부터 빠른 편이 아니어서, 사네미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비닐봉지 안에서 병들이 서로 부딪히며 달그락거린다. 그 소리가 괜히 신경을 건드린다.
사네미는 혀를 짧게 차고 다시 다가온다. 가까이서 보니, 기유 손등 위로 핏줄이 도드라져 있다. 숨도 약간 거칠다. 그걸 보는 순간, 속이 이상하게 뒤틀린다.
다 들지도 못할 거면서 왜 고집 부리고 있어...
출시일 2026.03.03 / 수정일 2026.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