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천 상무 축구 선수 (제주 SK)
카메라를 샀다. 정확히는 아빠가 사 주신 거지만. 아빠의 귀농으로 따라온 아빠의 고향인 김천에서 할 일이 너무 없다며, 끊임없이 징징대는 날 위해서 아빠는 카메라를 사 주셨다. 사진이나 찍으러 다니라면서. 그럼 좋아할 줄 알고? 당연하죠. 이거 완전 비싼 카메라잖아...! 대학은 서울로 다니고 있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휴학을 하고 아빠를 따라서 온 아빠의 고향인 김천은 꽤 좋았다. 물 맑고, 공기 좋고, 평화로워요~ 매우 심심한 거 빼면. 김천 곳곳을 다니면서 사진을 얼마나 찍었는지 모르겠다. 사진을 찍으면서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와도 친해지다 못해 이제 손녀딸 역할도 하고 있다. 동네 강아지, 고양이도 날 알아본다구~ 이제 어디 가서 사진을 찍어야 하나 싶을 때쯤 눈에 띄는 곳이 하나 있었다. 바로 김천종합스포츠타운이라는 곳. 알고 보니 김천에 축구팀이 있더라구요? 축구라고 하면 월드컵밖에 안 보는데... 가서 사진 찍어도 되나? 축구 선수들은 많이 움직이니까 움직이는 피사체 찍다 보면 사진 스킬도 많이 늘 것 같은데... 그땐 몰랐지, 김천 상무 경기장에서 내 운명의 짝을 만날 줄은. #적극적인남자소심한여자 #다정남햇살녀 #사진은사랑을싣고 #꿀떨어지는달달한연애
헐, 팔로우가 왜 늘지? 내 인스타 사진 계정 팔로워는 20명 정도였는데...? 갑자기 늘어난 팔로워에 누가 날 팔로우 했나 싶어서 확인해 보니 전부 축구를 좋아하는 팬분들의 계정이었다. 헉, 내가 김천 선수들 사진 올려서 그런가...? 좋다! 우연히 김천 경기장에 가서 찍은 사진들이 소소한 화제가 되어버렸다. 알고 보니 김천 상무는 K리그 축구 선수들이 군대로 오는 팀이었고, 아직은 선수들을 다 모르지만, 유명한 선수분들이 많으셨다. 이제 이름은 알아야 하는데, 프로필 사진이랑 스타일들이 다르셔서... 쿨럭. 그렇게 여섯 번 정도 경기장에 가니, 이제 김천 선수분들도 날 알아보시는 것 같은 건 내 기분 탓이겠지. 사진 찍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것 같지만, 점점 선수분들이 내 카메라 렌즈를 봐 주시는 게 느껴졌다. 내 사진 계정도 점점 커졌고, 간혹 김천 선수분들이 하트를 눌러 주시기도 했다. 음, 나쁘진 않은데? 어쩌다 보니 김천 상무 사진 계정이 되어버린 내 사진 계정을 열심히 키워가면서 경기장에 다니던 중에 난 독감에 걸려버렸다. 그것도 엄청 독한 놈으로다가. 당연히 경기장에 갈 수 없었고, 사진도 찍을 수 없었다. 그러니 계정 업데이트도 못할 수밖에 없었고, 이주를 꼬박 앓고 나서야 난 독감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리고 들어가 본 사진 계정엔 많은 디엠이 와 있었다. 대부분은 내 안부를 묻거나 걱정하는 디엠들이었고, 난 이런 계정을 처음 운영해 봤기에 업로드를 멈출 때는 공지를 올려야 한다는 것들 이제서야 알았다. 부랴부랴 공지를 올리고, 마침 오늘 홈 경기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카메라를 챙겨서 경기장으로 향했다. 이 주 만에 온 경기장은 여전히 좋았다. 자리에 앉아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오늘은 새로운 선수분들이 많이 보이셨다. 아, 저번 주전 선수분들은 제대하셨나 보다...! 교체 선수분들이 주전 선수가 되셨네. 경기가 끝나고, 사진도 다 찍고 나서 주차장을 통해서 나오는데, 팬분들께 한창 사인을 해 주시는 김천 선수분들이 보였다. 나도 유니폼 있는데, 사인 받아볼까...? 난 소심한 편이라서 선수들한테 사인받아본 적도 없고, 같이 사진 찍어본 적도 없는데 오늘은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김천 유니폼을 들고 쭈뼛쭈뼛 다가갔다. 고재현 선수...! 저분은 고재현 선수다. 고재현 선수한테 다가가니 갑자기 어, 맞죠? 라고 하신다. ... 뭐가 맞아요?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고재현 선수를 바라보고 있는데, 내게 기다려 달라며 사라지신다. 그리곤 누군가를 데리고 오시는데, 그 사람은 김... 태환 선수셨나? 원래 제주 SK 팀이시라는. 김태환 선수셨다. 김태환 선수는 왜...? 고재현 선수를 바라보자 씨익 웃으신다. 그러더니 유니폼에 사인을 해 주시고 사라지시는 고재현 선수. 저기... 라며 김태환 선수에게 조용히 말을 걸자 김태환 선수는 유니폼에 사인을 해 주시며 말을 하셨다.
그동안 왜 안 오셨어요? 기다렸는데.
출시일 2025.11.01 / 수정일 2025.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