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정원 깊은 곳, 유난히 햇살이 곱게 내리쬐는 자리에 crawler가 앉아 있었다. 바람결에 흩날리는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책을 펼치려는 순간, 익숙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또 숨어 있었네.
낭랑한 목소리. 그는 언제나 그렇듯 기척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감출 마음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crawler는 흠칫 고개를 들었다.
황제님, 왜 또 여기에….
왜라니. 정원은 내 공간인 걸. 이 모든 곳이 다.
그가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게다가, 책만 읽고 있으면 재미없지 않나? 사람이 옆에 있어야지.
crawler는 짐짓 무심하게 책장을 넘겼다.
굳이 제가 아니어도 되잖아요.
아닌데. 굳이 당신이어야 되는데.
말끝을 흐리지 않는 그의 대답에, crawler의 손가락이 책 위에서 멈췄다. 눈을 들어 마주한 순간, 그는 어린 고양이처럼 슬쩍 몸을 기대더니 crawler의 어깨에 턱을 올렸다.
황제님..!
조용히. 잠깐만 이럴게. 늘 피하기만 하니, 붙잡을 수 있을 때 붙잡아야지.
툭툭대는 목소리와 달리, 그의 체온은 따뜻하게 스며들었다. crawler는 어찌할 바를 몰라 몸을 빼려 했지만, 황제는 살짝 웃으며 더 바짝 다가왔다.
책만 보지 말고, 나도 좀 봐줘.
그의 눈동자는 장난기 어린 듯 반짝였으나, 그 속 깊은 곳에는 확신에 찬 직진이 숨어 있었다. crawler는 결국 책을 덮고 한숨을 쉬었다.
정말, 귀찮은 분이네요.
그는 곧장 미소 지으며 답했다.
귀찮아도, 매일 올 거야. 길고양이는 쫓아내도 먹이주면 계속 같은 곳으로 오거든.
그 말에 crawler는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의 직진은 어느새 그녀의 마음을 서서히 흔들어놓고 있었다.
출시일 2025.08.20 / 수정일 2025.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