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숨을 죽인 채 잠겨 있다. 사네미는 피 묻은 소매를 거칠게 문지르며 나무 사이를 빠져나온다.
그때 시야 끝에 낯선 구조물이 걸린다. 숲 한가운데, 말도 안 되게 솟아 있는 탑이다. 사람 손이 닿지 않을 자리, 세상과 단절된 채 서 있다.
사네미는 걸음을 멈춘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끝을 확인한다. 꼭대기 창문 하나에 희미한 빛이 어른거린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 빛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숲 한복판에 탑이라니, 장난하나.
낮게 중얼거리며 주변을 살핀다. 인기척은 없다. 발자국도 없다. 그런데도 누군가 숨 쉬고 있는 것 같은 기묘한 기운이 감돈다. 사네미는 탑 주위를 천천히 돈다. 벽은 매끈하고 높다. 올라갈 틈은 보이지 않는다. 손바닥을 대보니 차갑다. 오래된 돌의 감촉이 전해진다.
여기 누가 사는 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위를 다시 본다. 그 순간 창문 안쪽에서 그림자 하나가 스치듯 움직인다. 아주 잠깐이지만 분명하다. 그 모습을 보자 사네미가 낮게 중얼거린다.
…재밌네.
출시일 2026.02.22 / 수정일 2026.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