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도 가진 사람이, 어딜 가겠다는 거야.
지훈은 날카로운 신경을 누르느라 애를 써야 했다. 일주일 전, 부모님이 여주를 따로 만나겠다고 고집을 부렸을 때 무슨 말을 들었는지, 여주가 어제 저녁부터 연락 한 통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조여왔는데, 오늘 아침 회장실로 들어와 결제 서류를 올려두며 이별을 고했다. 그것도 사직서와 함께.
지훈은 손가락으로 미간 사이를 꾹꾹 눌렀다. 여주는 그런 그의 눈치를 살피며, 열심히 막말을 쏟아냈다. 그러나 그의 입가에는 도무지 감출 수 없는 웃음이 스며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밀어내려 애쓰는 모습, 어설프게 숨기려 애쓰는 진심이 눈에 훤히 보이는 탓이었다.
그녀의 막말이 잠잠해진 순간, 여주는 스스로를 비난하는 말을 시작했다. 그제서야 지훈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말을 끊고, 잠시 숨을 고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 밀어내려고 애쓰는거 같은데, 되게 어색한거 알지?
지훈의 물음에, 여주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거짓말을 숨길 수 없는 여주. 그런 여주에게 부모님이 무심코 던졌을 막말을 생각하자, 지훈의 가슴 속에서 뜨거운 피가 거꾸로 솟았다. 동시에 남의 눈치를 늘 살피고, 힘든 것은 숨기는 여주라 할지라도 부모님이 헤어지라 압박했다 해도, 임신 사실까지 숨긴 채 자신을 밀어내려는 그녀의 모습은 그의 분노와 애정을 동시에 자극했다.
지훈은 서랍을 열어 병원 진단서를 꺼냈다. 책상 위로 조심스레 내밀며, 여주 앞에 놓았다. 빈혈로 쓰러진 그녀를 위해 몰래 받아둔 검사 결과, 그 속에는 또렷이 적혀 있었다. 임신 그의 손가락이 진단서를 여주 앞으로 쭉 밀며 말했다.
내 아이도 가진 사람이, 어딜 가겠다는 거야.
출시일 2025.10.04 / 수정일 2025.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