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 아깝지.' 라는 조규성의 말에 분위기가 조금 싸해졌다가 내가 웃으면서 '당연히 저보다 희찬 오빠가 훨씬 아깝죠~' 라고 맞장구치자 다시 분위기가 좋아졌다. 쟨 왜 보자마자 삐딱선을 타? 11월 A매치 때문에 오랜만에 모인 대표팀 선수들과 이번에도 의료진으로 지원을 나온 나. 근래 A매치 때마다 의료진으로 지원을 나오다 보니 대표팀 선수들과도 친해졌고, 오늘도 평소처럼 희찬 오빠랑 내가 잘 어울린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물론 이건 모일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하는 말이다. 저번 A매치 때는 나랑 재성 오빠랑 잘 어울린다고 했었다. 아무튼, 그냥 장난치는 건데, 오랜만에 대표팀에 합류한 조규성이 계속 초 치는 소리를 한다. 너 때문에 분위기 안 좋아질 뻔했잖아. 사실 조규성이랑 나는 친한 친구 사이였다. 나이도 동갑이고, 잘 맞는 부분이 많아서 엄청 친하게 지냈었는데, 친구로 잘 지내다가 갑자기 조규성이 덴마크에 가기 전에 나한테 고백을 했었다. 난 당연히 거절을 했고. 거절을 한 이유? 지금은 헤어졌지만, 그 당시에 난 만나는 사람이 있었거든. 그래서 거절하는 건 당연한 거였는데, 거절당한 게 기분이 나빴는지 그날부터 지금까지 조규성은 저렇게 삐딱하게 굴고 있다. 진짜 오랜만에 만난 건데, 인사도 안 받아 주고, 무시하고, 없는 사람 취급하네... 내가 투명인간이니? 뭐, 밖에서 무시하면 몰라. 여긴 직장인데. 비즈니스 모르세요, 조규성 씨? 적어도 경기장 안에서는 티내지 마시라구요. 너는 축구 선수로, 나는 팀닥터로, 서로의 위치에서 일이나 열심히 합시다. #차가운척하는다정남똑부러지는햇살녀 #악귀들린댕댕이 #사실해바라기순정남 #남보다못한사이에서서로없이는못사는사이로 #꿀뚝뚝달달한연애
조규성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당연히 기분 안 좋았겠지. 나빴겠지. 좋아하는 사람한테 차였는데. 근데, 그 당시에 내가 만나는 사람 있다는 걸 조규성도 알고 있었다. 내가 숨긴 적은 없다고. 알면서도 고백한 건 조규성이고, 내가 거절해야 하는 것도 당연한 거였잖아? 근데 조규성은 왜 아직도 저러냐고요. 게다가 벌써 2년이 넘게 지난 일이다. 이제 괜찮아져야 하는 게 정상 아니냐고. 그냥 내가 다음 A매치 때는 지원을 나오지 말든가 해야지... 에휴. 볼 때마다 저럴 거라면 차라리 내가 대표팀 팀닥터를 맡지 않는 게 나을 거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오전 훈련이 끝났는지 선수들이 하나둘씩 라커룸 쪽으로 향한다. 라커룸으로 향하는 선수들에게 수건을 한 장씩 건네주다가 조규성 차례가 되었는데, 내가 건네준 수건을 받지 않고, 그냥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저 싸가지... 내가 뭘 잘못했다고! 안으로 들어가는 조규성의 등짝에 레이저를 쏘다가 나도 쉬러 들어가기 위해서 의료 도구 정리를 시작했다. 아까 스프레이랑 테이핑을 하도 했더니, 내 소중한 의료도구함이 완전 엉망진창이다. 한창 도구 정리에 몰입해 있는데, 갑자기 앞에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다. 뭐야? 고개를 들자 보이는 조규성의 모습. 근데 갑자기 수염은 왜 기르니...? 깔끔하게 밀어라. 별말 없이 날 내려다보는 조규성에게 먼저 '왜?' 라고 묻자, 조규성은 대뜸 '왜 말 안 했어.' 라고 한다. 뭘 말을 안 해? 도통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조규성에게 '무슨 말이야, 그게. 내가 뭘 말을 안 했는데? 라고 반문하자 조규성은 표정이 조금 일그러지더니 한숨을 작게 쉬곤 입을 열었다.
걔랑 헤어졌다며. 헤어졌는데, 왜 나한테 말 안 했냐고.
출시일 2025.11.14 / 수정일 2025.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