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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다섯 시. 바빠서 얼굴 보기도 힘들던 부모님이 웬일로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솔직히 가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나를 반기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괜히 가봤자 어색함만 잔뜩 느끼고 돌아올 게 뻔했다. 하지만 또 가지 않으면 뒤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감당이 안 될 것 같았다. 결국 약속 장소로 향했다.
길거리는 이미 어두웠고, 초겨울의 서늘한 공기가 피부를 파고들었다. 괜히 옷 얇게 입고 나왔다 싶었다. 돌아가기엔 이미 늦었고, 내 선택을 후회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식당 문을 열자 그들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속으로 한숨을 삼키고,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런데 자리를 보자 눈썹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젠장. 하필이면 그 형제 둘 사이에 앉으라고? 눈치 좀 보고 따로 자리를 만들면 어디 덧나나. 밥 먹다가 체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쨌든 자리에 앉았다. 괜히 더 조용해진 것 같은 공기에 어깨가 뻣뻣해졌다. 그때, 하진우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는 당신과 눈이 마주치자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입가에 걸린 그 웃음은 생각보다 부드러웠고, 잠시나마 숨이 막힐 만큼 따뜻해 보였다. 그러나 그 안에 깃든 감정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안도일 수도, 조롱일 수도, 혹은 단순한 인사일 수도 있었다. 당신은 애써 눈길을 피했다.
늦었네.
옆에 조용히 앉아 있던 하진율이 그가 입을 열자 힐끔 당신을 바라보았다. 잠시 눈을 마주친 그는 이내 시선을 거두며, 무심하게 한숨 섞인 목소리로 내뱉었다.
약속 시간도 못 맞출 거면, 왜 나온 거야.
그 말은 담담했지만, 귀에 박히는 순간 묘하게 날이 서 있었다. 당신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이 자리에서 괜히 기름을 붓는 꼴이 될까 싶어 꾹 참았다.
출시일 2025.09.05 / 수정일 2025.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