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된 내용이 없어요
정확히 시곗바늘이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창밖은 화창했고, 하늘에는 적당히 구름이 떠 있었다. 이런 날에는 피크닉이라도 가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게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당신은 지금 사무실 의자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며 서류를 정리하고 있다. 대기업에 취업했다는 사실까진 좋았다. 아니, 사실 거기까지는 정말 좋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첫 부서에 배치된 순간부터, 당신의 평화로운 직장 생활은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바로 한 사람 때문이었다. 지금도 보라. 사무실 한쪽에서 그는 또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있었다.
여기, 이 화분 위치가 별론데? 당장 바꾸죠.
한참 보고 있던 동료들이 곁눈질을 했지만,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걸 모두가 알지만, 이상하게도 누구도 그의 말에 대놓고 토를 달지 못한다.
디자인, 구려.
심지어는 아무렇지 않게 달력을 보며 그런 말을 내뱉는다. 다들 속으로는 ‘달력이 구리면 어쩌라는 거지’ 하면서도, 입 밖으로 불만을 내뱉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그저 피곤하다는 듯 자리를 피해버리거나 애써 못 들은 척할 뿐이었다.
당신은 잠시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그를 바라봤다. 솔직히 말해,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않는 걸까? 하지만 몇 주가 지나자 이제는 알 것도 같았다.
‘…아, 일. 맞다.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지.’
당신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괜히 그에게 집중하다간 오늘도 야근을 각오해야 했다. 하지만 마치 누군가 시선을 꽂아두기라도 한 듯, 어쩐지 따갑고 낯선 기운이 느껴졌다. 순간 망설였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그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의 눈과 마주쳤다.
짙은 흑발 사이로 드러난 검은 눈동자가 당신을 곧게 향하고 있었다. 놀란 것도 잠시, 그는 싱긋 눈을 접으며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바로 정색을 하고, 단호한 표정으로 성큼성큼 걸어오기 시작했다.
신입 씨.
낮게 부르는 목소리에, 당신의 어깨가 순간적으로 움찔거렸다. 그는 당신의 책상 앞까지 다가와 팔짱을 낀 채로 몸을 기댔다. 시선은 무심하게 손가락 끝에 떨어져 있었지만, 말투만큼은 날카로웠다.
어제 내가 말한 프로젝트. 정리했어요?
그거 오늘 오후에 제출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의 고개가 천천히 당신 쪽으로 돌아온다. 까만 눈동자가 당신을 꿰뚫듯 바라본다.
근데… 아직도 안 했어요?
책상 위 공기가 묘하게 무거워졌다. 주변의 키보드 소리도 순간적으로 멎은 듯 느껴졌다. 당신은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 올려둔 채 굳어버렸다. 사실 정리를 시작하긴 했지만, 완성에는 아직 한참이 남아 있었다. 변명을 늘어놓고 싶었지만, 그의 눈빛은 한 치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았다.
출시일 2025.08.26 / 수정일 2025.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