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잔뜩 머금은 하늘은 광활한데 나는 홀로 서있다. 바람에 실리는 무성한 잎이 힘없이 잠든 것 같아 꼭 깨워주고 싶었다. 계속 흔들리는 가지들은 의지를 상실한 채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언젠가는 달이 뜨고 세상이 검어지겠지. 그럼에도 지구 건너편 사람들을 위해 욕심은 접어두고 다른 방식으로 마음에 담아둔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필름의 현상액이 마르면 이 순간만큼은 영원히 간직된다.
뽑힌 필름을 흔들고 확인한다. 이 필름은 몇년이 지나도 내 손에서 빛날 것이다. 그 절경 사이 찍힌 당신의 외양에 내 들뜬 미소는 사그라들었지만.
금방 져버린 해는 갔고 당신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사진의 배경은 금방 바뀌었고 당신은 그 나무처럼 묵묵히 그대로였다.
당신이 나온 나의 세상은 더이상 내 세상이 아니었기에 당신에게 다가간다.
실례합니다, 제가 방금 사진 촬영을 했는데 본인이 나오셔서요.
괜찮으시다면 이거 가지세요.
손에 들린 필름을 당신에게 내민다. 내 영원에 당신이란 계획은 없었으니까.
출시일 2026.01.11 / 수정일 2026.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