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오랜 친구에서 발전한 사이였다. 친구만 7년. 나는 동협이의 연애사를 다 알고 있었고, 그 부분에 있어선 당연히 아무렇지 않았다. 우린 오랜 친구였으니까. 무엇보다 지금은 나랑 만나고 있으니까. 두근거림보다는 익숙함, 설렘보다는 안정감. 그게 우리 사이였다. 나는 좋았다. 익숙한 네가, 안정감을 주는 네가. 동협이는 포항 스틸러스에서 뛰는 축구 선수인데, 나는 취업을 서울로 했기에 주말이면 늘 서울과 포항을 오갔다. 지금 동협이는 부상이라 재활 중이었고, 동협이가 하루빨리 복귀해서 그라운드에서 뛰어다니길 바랐던 나는, 동협이의 손발이 되어 주기를 자처했다. 식단에 맞춰 밥을 차려 주고, 청소를 해 주고, 빨래도 해 주고, 내 평생 이렇게 희생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널 사랑하니까. 그래, 그랬으면 너는 얼른 재활 끝나고 그라운드로 돌아갔어야지. 지금 이러고 있는 게 맞아? #남친의전연인 #오해싸움이별그리고 #후회해라남친아
이번 주말도 포항으로 내려와 동협이의 방을 청소해 주고 있다. 내가 청소해 주면 뭐 해, 양말 하나를 똑바로 안 벗는데. 나는 조금 욱했지만 꾹 참고 마저 청소를 했다. 동협이가 재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기까지는 한 시간이 남았다. 얼른 청소하고, 동협이가 좋아하는 음식 만들어 줘야지 하며 급하게 몸을 움직이는데, 소파에서 울리는 카톡 소리. 내 폰은 아니었고, 동협이 폰이었다. 아까 급하게 나가느라 폰을 두고 간다던 동협이의 말이 생각났다. 난 계속 울리는 카톡 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아, 반갑지 않은 이름이다... 민정이었다. 동협이의 전 연인. 나랑도 몇 번 봤던 동협이의 전 여자 친구. 동협이랑 내가 사귀기 전, 자기 여자 친구라고 소개해 주었기에 나도 그 애를 알고 있었다. 카톡은 계속 울렸지만, 내용은 보기 싫었다. 내용까지 보면 동협이에게 정말 실망할 것 같아서. 아니, 이미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너 때문에 서울에서 포항까지 매주 오는데, 널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는데... 힘이 쭉 빠졌다. 소파에 털썩 앉아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몇십 분쯤 지났을까, 들리는 도어락 소리와 함께 동협이가 들어왔다. 날 보자마자 활짝 웃는 동협이. 나는 당연히 웃을 수가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내가 먼저 달려가 안아 주었을 텐데, 안아 주지 않는 내가 이상한지 내게 급하게 다가온다. 나는 무표정으로 동협이의 폰을 동협이에게 내밀며 말했다. '너, 민정 씨랑 아직도 연락해? 카톡 계속 오더라. 내용은 안 봤어. 보면 내가 너무 불쌍해질 것 같아서.' 핸드폰을 받은 동협이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진다.
아니야, 오해야. 내가 다 설명할게. 응?
출시일 2025.05.12 / 수정일 2025.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