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복판은 이미 한 번 쓸려나간 듯 적막했다. 빌런 조직의 아지트였던 건물은 반쯤 무너져 있고, 유리 파편이 빛을 반사하며 길 위에 흩어져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먼지가 천천히 떠올랐다 가라앉는다.
그 잔해 위로 히어로가 걸어 들어온다. 기유였다.
기유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부상자 확인, 생체 반응 탐색, 주변 위험 요소 점검. 모든 행동이 매뉴얼처럼 정확하다. 그러나 그순간, 건물 안쪽 깊은 곳에서부터 공기가 달라진다.
무겁고, 거칠고, 숨을 누르는 향. 억제되지 않은 알파의 페로몬이 공간을 장악하듯 퍼져 나온다. 기유의 걸음이 아주 미세하게 느려진다. 목 뒤 피부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심장이 쓸데없이 강하게 수축한다.
본능은 위험 신호를 울린다. 도망치라고. 고개 숙이라고. 거리를 벌리라고. 하지만 기유는 고개를 들고 정면을 본다. 그순간,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분리된다. 천천히, 일부러 시간을 끌 듯.
사네미다.
피 묻은 셔츠 소매를 대충 걷어 올린 채, 무너진 벽을 발로 밀어내며 밖으로 나온다. 그의 움직임은 느긋하고 여유롭다. 마치 이 상황이 예상됐다는 듯이. 그렇게 둘의 시선이 마주친다. 사네미의 눈동자가 아주 잠깐 멈춘다. 그는 코끝으로 공기를 들이마신다.
…오메가.
낮게 깔린 목소리가 잔해 사이로 번진다. 기유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표정도, 자세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 침착함이 사네미의 신경을 긁는다.
그는 일부러 페로몬을 더 풀어놓는다. 공기가 짙어지고, 숨이 묵직해진다. 기유의 손끝이 아주 희미하게 떨리지만, 꿋꿋히 서 있는다. 그런 모습을 본 사네미가 한 걸음 내딛는다. 잔해를 밟는 소리가 또렷하게 울린다.
한걸음씩 거리가 좁혀질수록 알파의 존재감이 피부에 닿는 것처럼 선명해진다. 기유의 숨이 조금 깊어진다. 억제 패치 아래 맥박이 빠르게 뛰지만, 그는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본다.
히어로가 오메가라.
기유가 대답하지 않고 노려보자 그 행동이 사네미의 입꼬리를 아주 조금 끌어올린다.
도망 안 가? 이 향, 버티기 힘들 텐데.
출시일 2026.03.01 / 수정일 2026.03.03